‘3307억원’ 3년 전 방탄소년단(BTS)의 월드투어 마지막 서울 공연에서 발생한 경제 효과의 추정치다. 티켓 판매비와 관객 숙박비, 교통비, 관광 지출 등 콘서트가 직접 창출해낸 수익을 다 더한 수치다. 외국인 관광객 재방문 등 간접 효과까지 포함하면, BTS 콘서트의 경제 효과는 1조원에 육박한다.
팬덤은 비즈니스의 핵심가치
이렇게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는데도 ‘팬’이란 존재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오래도록 그 가치를 인정 받지 못했다. 한편 굿즈를 사려고 공연장에서 새벽부터 줄을 서거나 공식 팬 카페와 아티스트 개인 SNS를 오가야 하는 등 팬덤 활동의 각종 불편함 역시 당연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하이브는 이런 불편함에 의문을 제기했다. 고객으로서의 팬덤 경험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방법이 하나의 플랫폼을 통한 ‘원스톱 서비스’였다. 팬 커뮤니티 활동과 아티스트가 출연하는 콘텐츠 시청, 앨범과 굿즈 구매 등 커머스 활동을 모두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플랫폼 ‘위버스(Weverse)’를 개발한 것이다.
위버스는 론칭 당해인 2019년, 구글플레이 ‘올해를 빛낸 인기 앱’에 선정됐다. 출범 1년여 만에 누적 앱 다운로드 수는 1000만건을 넘었고, 작년엔 5700만건을 돌파했다. 매출은 2019년 782억원에 이어 2020년 2191억원, 2021년 2394억원으로 성장했다.
미국 경제 전문지 패스트컴퍼니가 ‘2020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에 스냅,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에 이어 하이브를 4위로 꼽으면서 위버스의 혁신성에 주목했다. 위버스는 어떻게 고객 경험을 개선하며 246개국 글로벌 팬덤 플랫폼으로 도약할 수 있었을까?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2019년 기업 설명회에서 국내 음악 산업의 현재를 진단하며 이런 말을 했다. 2017년 기준 국내 게임 시장 규모는 13조1400억원인 반면, 음악 시장 규모는 5조8000억원에 그쳤다. 방 의장은 이 규모 차를 두고 “아직 누구도 음악 산업의 가치와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라며 “빅히트(현 하이브)가 바로 그 혁신을 이뤄내고 패러다임을 바꾸는 주체가 되고자 한다”라고 선언했다.
목표 달성을 위해 하이브가 역량을 집중한 영역이 바로 ‘고객 경험 혁신’이다. 플랫폼이 여럿이라 발생하는 불편은 고객만 겪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플랫폼이 분산돼 있으면 기업도 자신의 고객이 누구인지, 이들이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행동하는지 파악하기 어렵게 된다. 고객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들이 원하는 바를 제공할 수 없게 될 것이고 비즈니스는 당연히 정체하게 된다.
고객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를 갖고 있지 않다는 문제를 파악했다.
모든 고객 데이터는 유통업자의 손에 있었다.
우리는 고객 패턴조차 모르고 있었다.
뒷받침할 숫자 없이 어떻게 혁신을 이룰 수 있겠는가
- 방시혁 의장, 패스트컴퍼니 인터뷰 中 -
⑴ 고객 데이터를 한 곳에
방 의장은 파편화된 고객 데이터를 한 곳에 모을 방법을 고민했고 플랫폼을 개발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직원들은 처음엔 여타 플랫폼처럼 커머스 목적의 플랫폼을 기획했다. 하지만 최우선 목표가 커머스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목적에 맞게 커뮤니티 기능에 충실한 플랫폼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온 초기 기획안은 포털 팬 카페 같은 형태였다. 팬들의 요구 사항을 수집해보니 여러 아티스트보다는 한 아티스트만을 좋아하는 경향이 발견됐다. 이에 위버스 가입 시 “당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누구입니까”라고 묻고 해당 아티스트 팬덤 활동에 몰입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설계했다.
⑵ 여러 아티스트를 한번에
그런데, 방 의장은 위버스 기획팀에 또 다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여러 아티스트 커뮤니티와 관련 콘텐츠 등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슈퍼앱 플랫폼을 만들어 기존 팬 카페와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자는 것이었다. 치열한 내부 토론이 오갔으나, 위버스는 슈퍼앱 플랫폼 쪽에 더 큰 가치를 두게 됐다. 하나가 아닌 여러 아티스트의 커뮤니티와 콘텐츠를 망라하는 ‘홈’ 화면을 추가한 형태로 피벗(pivot)한 것이다.
최준원 위버스컴퍼니 대표는 “팬들이 한 아티스트에 몰입하는 성향이 있더라도 앞으로는 더 다양한 취향이 포용될 수 있을 것이며 위버스가 슈퍼앱 플랫폼으로 성장하려면 여러 아티스트의 커뮤니티를 망라해야 한다는 게 방 의장의 방향성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방향성을 담아 2019년 6월, 위버스가 탄생했다.
⑶ 위버스 = '패노크라시', 뭔 말이여?
‘패노크라시(Fanocracy)’ 란 마케팅 전문가 데이비드 미어먼 스콧과 레이코 스콧이 『팬덤경제학』이란 책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직역하면 ‘팬이 통치하는 문화’인데, 공동의 노력으로 팬-팬은 물론 팬-아티스트의 결속을 다지는 행위를 말하기도 한다. 요즘엔 상품 자체보다 사람이 중요해진 시대라, 패노크라시는 현재 급부상 중인 비즈니스 전략이 되었다.
위버스가 바로 이 패노크라시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특히 위버스는 기존 팬 커뮤니티와의 차별화를 위해 팬과 아티스트가 가깝게 소통할 장치를 마련했다. 대표 기능이 바로 앱 내 ‘커뮤니티’이다. 이 커뮤니티는 팬들이 작성한 게시물을 모은 ‘피드(Feed)’, 아티스트가 팬들을 위해 직접 남긴 게시물을 보여주는 ‘아티스트(Artist)’, 아티스트 출연 콘텐츠를 볼 수 있는 ‘미디어(Media)’, 아티스트와 실시간 영상 소통이 가능한 ‘라이브(Live)’ 탭으로 구성된다.
⑷ 아티스트와 팬들이 직접 만드는 공간
운영진이 모든 걸 주무르는 기존 커뮤니티 방식과는 크게 다르다. 회사 측은 그저 아티스트와 팬 간의 소통을 촉진할 뿐이다. 예를 들어, BTS 멤버 슈가가 위버스 앱을 켜면 “팬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가 뜨면 커뮤니티 매니저가 아티스트와 팬들의 소통을 돕는다.
게다가 위버스에 신규 입점한 아티스트들은 초반에 어떤 포스트나 댓글로 팬들과 소통해야 할지 어려워하는데, 회사의 매니저는 이들에게 적절한 주제를 제시해주거나 팬들의 반응이 좋았던 다른 아티스트들의 글을 공유해주는 역할을 한다. 팬들이 아티스트의 새 소식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게 푸시 알림도 제공하고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15개 언어의 번역 기능을 제공하기도 한다.
하이브는 위버스를 활용해 오프라인 고객 경험도 개선에 나섰다. 기존엔 오프라인 공연을 보려면 티켓과 굿즈, 현장 이벤트 신청을 각각 별도의 사이트에서 진행해야 했는데, 위버스에서 원스톱 신청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특히 공연 당일 현장에서만 구매할 수 있던 한정판 상품을 위버스샵에서 온라인 주문할 수 있게 했다. 현장에서 새벽부터 줄을 서던 팬들의 불편함이 크게 개선됐다.
2달만에 이용자 200만명 돌파
위버스는 론칭 2달 만에 전 세계 229개국에서 회원 200만명이 가입했다. 기존 BTS 팬 카페 회원 수가 6년간 150만명이었단 점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폭풍 성장’이라 하겠다.
매출에서도 바로 효과가 났다. 2019년 공연에선 총 58만개의 굿즈 상품이 팔려 전년(26만개)보다 2배 넘게 팔린 것이다. 위버스샵을 통한 주문으로만 50만개가 팔렸다. 윤석준 당시 빅히트엔터테인먼트(현 하이브) 사업 부문 대표는 “일반적으로 어떤 산업에서도 같은 조건에서 프로세스 개선만으로 매출이 2배 이상 뛰는 경우는 드물다”며 “자체 플랫폼 위버스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이 순간에도 더 나은 플랫폼을 꿈꾼다
위버스 운영을 위해선 한 번에 수백만 명이 몰리는 트래픽을 핸들링할 역량이 필요하다. 작년 4분기 위버스의 월간 활성 사용자 수가 680만명이었다. 이런 대용량 트래픽을 처리할 경험과 역량을 가진 전문 인력은 국내에 흔치 않다. ‘엔터 업계에서 개발자를 왜 뽑지?’ ‘이 서비스가 지속될까?’라는 선입견도 뚫어내야 한다.
때문에 위버스가 영입에 주력한 인력은 ‘IT 업계에서 평판이 좋거나 실력 있는 중간 관리자급 핵심 인재’였다. 좋은 인력이 들어오면 이들의 추천으로 새 인력 영입 효과도 덩달아 커졌기 때문이다. 또 엔터 업계 특성상 IP(지식 재산권)와 콘텐츠 기반의 플랫폼을 개발한 경험이 있는 엔지니어를 찾는 게 중요해 게임 업계 출신 리더 등도 집중 공략했다. 그 결과 최근 1년 사이 엔지니어 규모만 3배를 확충했다.
위버스 개발팀이 철저히 대비한 분야 중 하나가 ‘전 세계 동시 접속’ 문제였다. 2020년 4월 BTS의 온라인 스트리밍 공연 당시, BTS의 위버스 회원 수만 400만명 이상이었다. 때문에 평소보다 2배 이상 서버를 증설하고 순간 치솟는 트래픽을 감당하도록 서비스 성능을 향상했다. 그 결과, 전 세계 162개 지역에서 최대 224만명이 동시 접속해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수준까지 플랫폼을 끌어올렸다.
위버스는 지난 7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글로벌 음악 페스티벌 ’롤라팔루자’에서 진행된 방탄소년단 제이홉과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무대를 위버스 라이브를 통해 220개 국가·지역에 생중계해 총조회 수 1628만회의 대규모 트래픽을 안정적으로 처리한 바 있다.
IT 기술 활용으로 온라인 공연 현장감도 극대화했다. 다양한 각도에서 무대를 감상할 수 있는 멀티 뷰가 대표적 사례다. 6가지 각도의 화면을 한 스크린에 제공하고 팬들이 직접 원하는 화면을 선택해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미국 라이브 스트리밍 솔루션 기업 키스위 모바일(Kiswe Mobile)과 손 잡고 만든 결과물이기도 하다.
승승장구하는 위버스
위버스 매출은 고공 행진했다. 2019년 782억원에서 2020년 2191억원, 작년엔 2394억원이 됐다. 주목할 건 위버스가 아티스트의 간접 참여형 매출을 늘려줬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엔터 사업은 음원 발매와 공연 등 아티스트가 직접 참여하는 활동 위주로 운영된다.
하지만 하이브는 BTS의 데뷔를 준비하면서부터 아티스트가 직접 참여하지 않아도 수익을 낼 구조를 만들기 시작했다. 위버스가 그중 하나였는데, 하이브에 따르면 위버스를 통해 발생한 총 결제 금액이 2019년 하반기 대비 올해 상반기 12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올해 2분기 결제 이용자 수는 2019년 동기 대비 640% 늘었다. 위버스 개발 전인 2017년 약 20%였던 하이브의 아티스트 간접 참여형 매출 비중은 작년 전체 매출 비중의 약 60%까지 상승했다.
고비도 있었다. 제품 불량, 배송 지연 등 이유로 소비자 불만이 잇따라 접수된 것이다. 2020년 5월∼2021년 1월 서울시 전자상거래센터에 접수된 위버스샵 관련 소비자 불만은 총 137건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위버스컴퍼니는 물류 관련 예산을 대폭 늘리고 업계 전문가를 영입했다. 국내 ‘톱 3’ 물류 업체로 40여개국에 물류센터 360개를 보유한 LX판토스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또 해외 팬들의 구매가 많은 일본과 미국에 거점 물류 센터를 구축하고 국내에서는 해외 출고가 용이하도록 공항 인근인 인천 청라 지역에 물류 센터를 조성했다. 이렇게 총 2만9040㎡(약 8800평) 규모의 물류 센터 3곳을 운영하며 연간 최대 1250만건의 물량을 수용 중이다.
경쟁의 벽도 허무는 위버스
'YG 블랙핑크'도 위버스 입점!
위버스에 입점한 아티스트는 지난 7월 기준 56팀이다. BTS,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등 하이브 산하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를 시작으로 선미, 스테이씨 등 다른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가 입점하며 외연을 확장했다. 레이블이 위버스 측에 먼저 입점을 제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작년 7월, 한 아티스트의 위버스 입성이 큰 화제를 모았다. 바로 YG엔터테인먼트 소속 걸그룹 블랙핑크였다. YG라는 대형 경쟁사 소속이자 약 7800만명의 유튜브 구독자를 가진 글로벌 아티스트 블랙핑크의 입점은 엔터 업계, 그리고 팬덤 경제에서 위버스의 위상을 드러내는 장면으로 평가받았다.
블랙핑크 이외에도 위너, 아이콘, 트레저 등 YG 소속 아티스트들의 위버스 입점은 하이브와 YG의 전략적 파트너십 아래 진행됐다. 하이브와 위버스컴퍼니는 작년 1월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YG의 자회사 YG PLUS에 7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했다. 현재 YG PLUS는 하이브의 음반과 음원 유통을, 위버스는 YG 소속 아티스트의 글로벌 멤버십 사업과 팬 커뮤니케이션, 기획 상품 판매를 담당하며 협력을 이어나가고 있다.
확장엔 한계가 없다!
'네이버'라는 날개를 달다
네이버와는 아예 플랫폼 통합을 추진했다. 위버스와 네이버의 브이라이브 사업부가 통합한 것이다. 브이라이브 사업부는 K-POP 아티스트 등이 출연하는 실시간 동영상 송출 서비스를 운영해왔는데, 작년 3월 네이버가 위버스컴퍼니에 4118억원을 투자해 지분 49%를 인수하고 위버스컴퍼니는 올해 3월 브이라이브 사업부를 약 2000억원에 양수했다.
두 플랫폼은 통합의 첫 결과물로 지난 7월 위버스 내 라이브 기능을 도입했다. 기존에는 아티스트와 팬들이 포스팅과 댓글로만 소통했다면, 네이버 기술 기반의 라이브 기능을 도입한 새 위버스에서는 동영상과 채팅을 통해서도 실시간 소통이 가능해졌다.
아티스트가 설정한 라이브 스케줄을 미리 확인하고 종료된 라이브 동영상은 VOD로 전환돼 다시 감상할 수도 있다. 최 대표는 “두 회사의 협업으로 포스팅, 댓글 등 비동기적 소통이 중심이었던 기존 위버스에 라이브라는 동기적 소통 방식이 더해져 시너지를 내고 있다”며 “앞으로도 새로워진 위버스에 적합한 다양한 소통 방식을 고안하기 위해 네이버와 함께 고민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초기에는 BTS의 팬덤이 위버스를 키우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 영향력이 큰 IP(지식재산권)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가 플랫폼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되곤 한다. 위버스의 경우 BTS가 팬덤 플랫폼 비즈니스에 시동을 거는 데 분명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위버스'에는 BTS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아티스트들과 그들의 팬들이 '위버스'를 소통과 연결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티스트들의 영향력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밑거름이 되고 있고, 그렇게 모인 팬들은 다시 무수한 트래픽을 만들어 내며 플랫폼에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고 그 외연을 더욱 넓혀주고 있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많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힘'이 바로 '핵심 경쟁력'이 된다. 그리고 '사람'이 모이는 공간에는 '상상'을 실현시켜주는 '힘'도 생기기 마련이다.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성장을 보여준 '위버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이 '공간의 힘'을 가지고 어디까지 성장하게 될지 기대된다.
위버스컴퍼니의 지분은
하이브가 51%
네이버가 49%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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