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페이가 한국에 올까?” 잊을만하면 떠오르는 IT 업계의 해묵은 주제다. 해마다 ‘이번엔 애플 페이가 도입된다’ ‘아니다’ 말들이 많았는데… 드디어, 애플 페이의 국내 진출이 가시화되고 있다. 근거는 2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지난주 목요일(15일) 애플이 한국어 홈페이지의 ‘애플 미디어 서비스 이용 약관’에 다음 문구를 추가한 것이다.
“지불 방법을 Apple 지갑에 추가했을 경우, Apple은 Apple Pay를 사용하여 귀하가 선택한 Apple 지갑 상의 지불 방법에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문구는 애플 페이를 쓸 수 없는 터키, 베트남, 미얀마 등의 서비스 약관에도 추가되긴 했다)
인재 채용도 또 하나의 근거다. 애플은 최근까지 한국과 일본의 애플 페이 사업을 총괄하는 경력 15년 이상의 컨트리 리드를 선발한다는 공고를 냈다. (현재 공고는 내려간 상태)
일반적으로 다국적 기업의 국내 진출 신호탄이 인력 채용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애플 페이의 국내 진출이 어느 정도 “이야기되고 있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2022.08.17 - [알아두면 쓸모 있는 이 세상 모든 경제 이야기] - 애플페이 국내 도입, "정말인가요? Apple Pay?"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애플 페이의 국내 출시설은 이제 다양한 언론 매체로 기사화됐는데, 애플과 파트너십을 맺을 카드사가 공식 발표하기 전까지 100% 확신할 수는 없더라도, 언론 기사에 나온 내용을 종합하면 다음 7가지로 요약된다.
① 현대카드가 1년 독점으로 11월 혹은 12월에 서비스 출시
② 현대카드의 애플 페이 전용 카드(또는 서비스)의 가입 목표치는 약 12만5000개
③ 연회비 캐시백 비롯, 아이폰·아이패드·애플워치 추첨 지급, 애플 최신 기기 구매 지원금 지원 등 프로모션 준비 중
④ 6개월 내 목표 판매량의 70% 달성이 목표
⑤ 우선 코스트코, CU에서 시작, 이후 약 50~60개 가맹점으로 확대 추진
⑥ 현대카드는 NFC 단말기 도입 및 서비스 구축 비용의 최대 60%를 지원할 것
⑦ 파이서브, 나이스정보통신, 한국정보통신, KIS정보통신, KG이니시스, KSNET 등 6개 VAN(카드결제 대행업체)*이 협력 진행 중
애플 페이 관련 기사를 읽으면서 “왜 그간 카드사들은 애플 페이 도입을 주저했을까?” “애플 페이가 시장에 어떤 파급력을 가져올까?” 등의 의문이 자연스럽게 든다.
카드사들이 '애플페이'를 외면해 온 이유
⑴ 추가 수수료 부담
카드사의 사업 모델은 수수료다. 국내 신용카드 가맹점의 80%를 차지하는 영세 가맹점의 신용카드 수수료율은 0.8% 수준이다. 만약 1만원을 결제하면 가맹점은 카드사에 수수료 80원을 준다. 그리고 카드사는 VAN사에게 통상 건당 수수료 50원을 넘긴다. 결국 1만원을 결제하면 카드사가 얻는 순수익은 30원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애플은 기존 실물 카드의 앱 구동에 대해 카드사에 추가 수수료를 요구했다. 무카드 거래이니 받아야겠다는 게 애플의 논리다. 이 수수료가 미국은 0.15%, 중국은 0.03%, 이스라엘은 0.05% 수준이다. 수수료가 부과되면 카드사의 수익성은 크게 악화될 것이 자명하다. 만약 미국 수준의 수수료를 애플이 국내 카드사에 추가로 요구한다면 순수익이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상황도 맞이할 수 있다.
⑵ 독자 표준 연동 문제
게다가 애플 페이가 지원하는 NFC 결제는 국제 표준 규격인 EMV를 따른다. EMV는 스마트 결제 카드, 결제 단말기, 현금 자동 입출금기 등 기술 표준에 기반한 결제수단을 말하는데, 처음으로 EMV 규격을 만드는 데 합의한 유로페이(Europay), 마스터카드(Mastercard), 비자(Visa)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명칭이다.
현재는 ‘EMVco’라는 회사로 확대됐고, 유로페이가 마스터카드에 인수 합병돼 해체하면서 비자카드와 마스터카드가 이끌고 있다. 디스커버리, AMEX, JCB, Unionpay 등 전 세계 주요 카드사들이 모두 EMVco의 회원사인데, EMVco의 기술을 활용할 경우 통상 0.04%의 수수료를 냈다. 접촉식 IC카드는 대부분 이 규격을 따랐다.
반면 국내 카드사들은 EMVco에 나가는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현재 NFC 독자 표준을 추진하고 있다. 독자 표준이란 국내 카드사를 중심으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Korea Local Smart Card(KLSC)를 말한다. 일각에서는 KLSC가 EMVco에 가입해 글로벌 표준인 EMVco와 연동될 거라는 예측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0.04%에 달하는 통상 수수료를 피할 수 없다.
애플 페이는 현재 EMVco 규격의 보안 토큰을 사용 중이다. 국내 KLSC가 EMV 호환 인증을 받지 못하면, 애플이 별도로 KLSC 방식을 애플 페이에 내재화해 이를 보안 토큰으로 받아내거나, 아니면 그냥 EMVco를 고수하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다만 후자의 경우, 국내 카드사의 수익성이 저하될 우려가 존재한다.
카드 업계 관계자는 최근 VAN사 6곳이 단말기 연동 작업에 나서고 있는 것을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이는 국내 표준과 연동되지 않는 순수 EMVco향 단말기를 공급하는 것은 물리적으로나 비용적으로 효율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연동을 통한 해법에 나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⑶ NFC 결제 단말기 문제
마지막으로 NFC결제 단말기와 관련된 해법도 주목된다. 언론 보도상으로는 현대카드가 NFC 단말기 보급을 지원할 것처럼 나왔다. 하지만 이는 엄연히 불법의 소지가 있다.
우리나라 여신전문금융업법(이하 “여전법”) 제18조의 3을 통해 신용카드와 관련한 거래를 이유로 부당하게 보상금, 사례금 등 명칭 또는 방식 여하를 불문하고 대가를 요구하거나 받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 경우 코스트코나 CU 등 가맹점에서 자발적으로 교체해야 하는데, 이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애플페이?
금감원 발표로는 작년 말 기준 국내 성인 1명당 카드 보유 개수는 2.5장이라고 한다. 카드사 입장에서는 카드를 많이 발급하는 것을 넘어, 얼마나 고객에게 주력 카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졌다.
현재 애플 페이와 함께 할 가능성이 높다고 거론되는 현대카드는 이미 코스트코 독점 계약의 효과를 본 바 있다. 2019년 2분기 15.6%였던 현대카드의 신용 판매 점유율은 1년 후 같은 분기 16.6%로 상승했다. 성숙기인 국내 신용 카드 상황을 고려하면, 코스트코 독점 계약이 효과를 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13년 전 아이폰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가장 많이 바뀐 것 중 하나는 출근길 지하철 풍경이었다. '메트로'나 '포커스'와 같은 무가지(無價紙) 신문 시장을 붕괴시켰고, 카카오를 비롯한 다양한 모바일 인터넷 기반의 신경제를 열었다.
만약 전체 스마트폰 가입자의 22%에 달하는 아이폰 이용자들이 '애플 페이'를 쓰기 시작한다면, 지하철 풍경이 바뀐 것만큼이나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까?
'애플 페이'로 인해 카드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은 곧, 1. 지갑을 열고, 2. 카드를 꺼내고, 3. 카드를 단말기에 꽂고, 4. 다시 빼는 이 4가지 행동과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애플 페이'와 연계된 카드사는 자연스럽게 신규 고객 확보가 가능할 것이고, 이용자들이 자사 카드를 주력 카드화하는 현상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애플 입장에서도 삼성 페이 때문에 아이폰 갈아타기를 주저하는 가입자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찻잔 속 태풍이 될지, 진짜 태풍이 될지는 결국 서비스가 출시된 이후 결정될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터치 방식의 결제를 지원하는 애플 페이가 확산되고 삼성전자도 자연스럽게 NFC 방식의 결제로 넘어오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결제 방식이 진일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2022.09.17 - [알아두면 쓸모 있는 이 세상 모든 경제 이야기] - 애플 신제품 발표, "달라진 것은 단 하나,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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