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가 미쳤어요
'강달러' 아니 '킹달러'
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 이후 약 13년 만에 1천360원을 돌파했다. 지난 6월 23일 1,300원을 돌파한 이후 3개월도 안 돼 1,360원을 넘었다. 심지어 미국의 고강도 긴축에 따른 '킹달러'(달러 초강세) 등으로 환율 상승세도 당분간 지속된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원화 약세(원/달러 환율 상승)의 가장 큰 원인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강도 긴축에 따른 달러 강세다.
완화가 기대됐던 달러의 강세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지난달 잭슨홀 미팅 연설 이후 다시 촉발됐다. 시장은 연준의 정책 전환을 기대했지만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통제되고 있다고 자신할 때까지 금리를 계속 올리겠다"라고 했다.
이후 강도 높은 긴축을 시사하는 연준 인사들의 매파(통화 긴축 선호)적 발언까지 이어지면서 '슈퍼 달러'가 지속되고 있다. 지난 1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9.66을 기록했다. 달러인덱스는 장중 한때 109.99까지 올라 20년 만에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
환율은 왜 오르고 내리나요?
환율은 두 나라 간 통화 가치의 비율을 표시한 것이고, 상대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현재의 원화 약세는 대내적 요인과 대외적 요인을 나눠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원화 약세란 반대로 얘기하면 달러 강세를 의미하니까 말이다.
대내적으로는 오늘 발표된 한국의 8월 수출입 지표가 부진했던 게 원인으로 꼽히는데, 대외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엔·달러 환율은 2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심리적 저지선으로 알려진 140엔까지 상승했다. 달러보다 항상 비싸게 거래되던 유로도 달러보다 싸게 거래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되면서, 유로가 달러 값과 같아지는 ‘패러티(parity·等價·등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대내 요인) '뛰는 수출 위에 나는 수입!'
8월 무역수지는 94.7억달러 적자로 발표됐다. 지난 4월 이후 5개월 연속으로 무역 적자를 기록한 것인데, 5개월 연속 적자였던 건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인 2007년 12월∼2008년 4월 이후 14년 여 만에 처음이었다.
내용을 분석해보면 수출에 문제가 있던 건 아니다. 8월 기준으로 역대 최고 실적인 567억달러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속적으로 수출이 증가해 역대 처음으로 무역 순위 7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수입 증가 폭이 컸다는 데 있다. 수출은 6.6% 증가했는데, 수입은 무려 28%나 증가한 것이다. 더구나 수출보다 수입이 증가하는 속도가 더 빠른 상황이 무려 15개월간이나 지속됐는데, 앞으로의 전망도 그리 좋진 않을 수 있다는 걸 암시한다.
일반적으로 무역수지 적자는 해당 국가의 환율을 약세로 만드는 요인이다. 왜냐면, 무역 적자 폭 확대는 그 자체로 달러 수요 확대를 의미할 뿐 아니라, 상대적인 수출 부진은 글로벌한 경제 성장 우려를 부르기 때문이다.
(대외 요인) '강달러에 힘을 더하는 연준'
지난 주말 잭슨홀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잭슨홀에서 ‘경기 침체를 각오하더라도 금리를 올려 반드시 인플레를 잡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출했다. 잭슨홀 미팅 이전까지만 해도 시장은 ‘금리를 어떻게 계속 올리겠어? 좀 쉬엄쉬엄 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Stop and go : 금리 인상을 멈췄다가 다시 하는 방식'의 통화정책을 염두에 뒀었다.
하지만, 파월의 생각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Higher for longer' 였다. 높은 금리 수준을 한 동안 유지해서라도 인플레를 잡겠다고 말한 것이다. 연준이 강경한 의지를 보인다는 건 두 가지 측면에서 달러 강세에 힘을 더한다.
① 연준의 고금리 기조는 달러를 들고 있을 때 더 높은 금리를 준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한미 금리차 역전을 암시하기 때문에 달러 강세 요인이다.
② 달러가 강세가 되면 다른 나라가 자연스럽게 긴축에 나서는 효과가 생기고, 이 때문에 전 세계 경제 상황이 동시에 안 좋아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렇게 글로벌 경제가 문제가 생길 땐 가장 대표적 안전 자산인 달러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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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 요인) 중국과 러시아 '너네는 또 왜 그러니?'
중국의 경기 둔화도 원화 약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도시 봉쇄 등으로 중국 경기에 대한 우려가 커졌고 이에 따른 위안화 약세가 나타났다. 위안화 약세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원화 약세로 이어진다.
올해 겨울 우려되는 액화천연가스(LNG) 대란도 원화 약세의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러시아가 유럽으로의 가스 공급을 중단하면 LNG 가격은 올라가고 대부분 에너지를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더 많은 달러가 필요해진다.
달러야 그래서 어디까지 오를 거니?
전문가들은 연준의 금리 인상 기조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당분간 환율이 오를 것이라며 1차 저항선을 1,365∼1,380원대로 봤다. 다만 현재 환율이 사실상 전례 없는 수준이고, 시장 불안에 상단을 계속 높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1,400원까지 오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연구원은 "올해 고점을 1,365원 정도로 봤는데, 시장에서 경계 심리가 고조되면 오버슈팅(단기 급등)이 나올 수 있다"며 "1,400원까지도 갈 수는 있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도 "현 상황에서는 1,400원까지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며 "상단을 확인하려는 투기성 베팅이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 역시 "일차적인 심리적 저항선은 1,380원 정도"라면서도 "1,400원도 가능은 하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희망의 메시지,
미 연준 긴축기조, '정점'에 다다랐다
전 세계 금융시장이 커다란 긴축 위험에 노출돼 시장 공포 심리 혹은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지만, 긴축 위험이 정점을 통과하고 있다는 관점도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폭이 이달을 정점으로 점차 작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지난 26일, 파월 연준 의장의 '잭슨홀 연설' 효과가 충분히 발휘되고 있다는 것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구두발언이었음에도 과열됐던 시장의 낙관론을 진정시켰고 동시에 기대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효과를 발휘했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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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주식과 주택가격 등 자산 가격 조정을 통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을 낮추는 효과를 얻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달 평균 유가가 7월보다 낮은 수준이어서 유가 반등이 물가에 큰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경기 둔화에 따른 소비 위축도 물가 압력 둔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물가 정점론'이 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미국이 11월초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연준이 정치적 영향을 직접 받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경기둔화 압력을 마냥 무시할 수 없기에, 11월 FOMC에서 금리인상 속도 및 규모를 낮추는 '정책 변화(Pivot)'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자금이 채권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는 현상도 미 연준의 금리 인상 사이클이 정점을 통과하고 있다는 기대감이 작용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서정훈 하나은행 연구원은 "1,370∼1,380원까지는 열어놓고 보고 있지만 1,400원을 터치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아직 연준의 금리 인상 경로에 불확실한 측면이 남아있다고 보고, 경기 침체 우려가 나올 때마다 긴축 완화 기대감이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 한은 총재님이 기억에 남는 메시지를 보냈다.
“한은의 통화 정책이 정부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한 건 맞지만 연준으로부터 독립했다고 생각하긴 어렵다.”
이 표현은 지금이야 정부의 압박이든 무역수지의 변화든 국내 요인도 중요하지만, 연준이 어떤 의사 결정을 하는지 그리고 그에 따른 변화가 얼마나 클지에 대해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는 걸 의미한다.
전 세계 통화가 달러 대비 약세가 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불안한 상황이지만, 원화만 이렇게 약세가 되는 게 아니란 점에서 과한 공포감 역시 금물이다.
9월 FOMC가 당장 다가오고 있지만, 시장은 벌써 11월을 바라보고 있다. 9월의 FOMC 결과는 이미 상당 부분 시장이 예상하고 있는 데다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다. '파월' 의장의 잭슨홀 연설뿐만 아니라 연준의 양적 긴축 움직임 등에서 당분간 '강달러' 기조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시장에 안도감이 다시 깃들기 까지 시간은 조금 걸릴 테지만 연준의 정책이 전환되는 순간 강달러 역시 정점을 확인하고 약세로 전환할 것이다. 조금 더 긴 호흡이 필요해졌지만, 시장은 분명 정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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